부안여고 적정기술동아리 ‘36.5+1°C’ 학생들의 햇빛발전 가로등 설명을 듣는 서외3마을 주민들. 주민자치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마을협의회 직접 참여하고 지역 학생들 아이디어 발굴
주민들 “마을관리 협동조합 만들어 직접 관리하겠다”
부정적 이미지의 젠트리피케이션 아닌 재생사업 방식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 고등학생들이 손수 만든 태양광 가로등이 걸리고, 골목길 담벼락을 따라 낮은 화단에는 주민들이 직접 가꾼 온갖 꽃이 핀다. 그리고 아무도 손대지 않아 스러져가는 폐가는 마을 주민과 부안의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서외3 마을에 진행 중인 ‘소규모 마을 재생사업’이 끝나면 보게 될 모습들이다.
이 사업은 부안군 도시재생뉴딜사업의 하나로 마을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주민들과 지역의 학생들이 함께 고민하고 직접 발로 뛰며 진행 중이다. 부안읍의 오래된 마을인 서외 3구 이장과 주민들은 도시재생 대학에 다니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부안여고 적정기술 동아리의 몇몇 여고생들은 자기들이 직접 만든 가로등을 설치할 곳을 찾아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마을 이장인 이몽용 씨(75)는 도시재생 대학의 최고 우등생이다. 강의 내용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두고, 온갖 자료를 빠짐없이 모아뒀다. 다른 지역의 마을 재생사업과 서외3마을을 비롯한 향교마을의 상황을 비춰보니 여러모로 잘 맞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도시재생 대학에서 보고 배우며 마을 개선에 꼭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 방향도 제시했다. “이장이라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녀. 나도 생업이 있어서 힘들었지만, 마을 사람들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게 지내볼까 하고 고민하다 된 거지”라며 소규모 마을 재생사업에 뛰어든 배경을 말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목표는 앞서 언급한 주거환경개선이다. 하지만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땅이나 집을 매입하지도 않고, 집을 헐어 새 도로를 내지도 않는다. 심지어 상권을 유치할 계획도 없다. 이런 방식이라면 특정 지역에서 개발이 이루어지면 땅값이 치솟고 원주민이나 소자본의 자영업자들이 쫓겨나고 마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 걱정도 없다. 마을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마을 사람들이 살던 터에서 그대로 살면서도 생활의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이번 사업은 총 5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한 햇빛 발전 가로등

첫 번째 햇빛 동행 프로젝트는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골목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한 태양광 발전 가로등을 설치하는 것이다. 부안여고 적정기술동아리 36.5+1°C는 부안군 도시재생 사업 서포터즈 중의 한 팀으로 이번 사업에 본인들이 직접 구상하고 만든 ‘태양광 발전 물병 가로등 Liter of Light’를 설치를 제안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저녁 드라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로등은 마을 분들의 의견과 이장의 도움을 받아 마을 골목 중 가장 어두워 보행환경이 나쁜 곳에 설치될 계획이다.
두 번째는 마을 골목 가꾸기인데, 골목길 담벼락을 따라 낮은 화단을 만드는 것이다. 대개 담벼락 안에 내 집 정원과 마당 꾸미기는 흔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담벼락 밖의 화단을 꾸며 우리 마을을 가꾸는 것이다. 서외3마을은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살고 있어 마을이 너무 조용하고 평범한데, 골목길 가꾸기를 통해 화사하고 활기 넘치는 마을로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몽용 이장은 “다른 곳에서 보니 바람개비를 줄지어 꽂으니 아주 보기가 좋더라”며 바람개비를 통해 마을에 역동적인 모습을 더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세 번째는 마을거점공간 만들기다. 기존의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은 노인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누구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마을의 젊은 세대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항상 개방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거나 건물을 지을 필요 없이 이미 마을에 있던 경로당의 용도를 넓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세대들도 자유롭게 모이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데 의미가 있다.

 

설명회 자리에 모인 주민들과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네 번째로 서외3 마을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모아 마을 기록물을 만든다. 이 마을에 서 있는 서문안 당간지주는 마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내오던 주민활동의 중심이었다. 이와 같은 마을에 어린 옛이야기와 더불어 오랜 세월 자기 속에 담고 있던 주민들 각자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만든다. 이야기를 듣고 모으는 작업은 젊은 세대들로 구성된 마을조사단이 맡게 된다. 작업 과정을 통해 세대 간의 한층 깊은 이해와 교류가 이뤄질 것도 기대되고 있다.
다섯 번째는 마을에 자꾸만 늘어가는 빈집(폐가)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절감의 문제는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이 마을처럼 주민의 평균연령이 높은 지역은 빈집이 늘어나는 속도가 다른 곳에 비해 눈에 띄게 빠르다. 그냥 사람만 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주인마저 찾을 수 없는 그런 집도 많다. 지네가 들끓는가 하면 자칫 우범지역이 될 수도 있는 이런 빈집들을 활용해 공간으로 사용하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 계획이다. 여기서 관리란 집을 리모델링 해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빈집의 상태와 조건에 맞춰 특별한 공간으로 꾸며 다양한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다. 예컨대 공방을 만들어 젊은 예술 활동가가 상주하며 공간을 쓰도록 하는 등의 방식이다. 또 상태가 너무 나빠 활용이 어려운 경우는 건물을 헐고 빈터를 주민들을 위한 주차공간으로 사용하는 등의 방안을 찾는다. 이는 기존 개발사업의 대명제인 ‘매입 후 철거와 건축’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 빈집관리 사업은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서 추진 중인 ‘빈집관리 시범사업’과 맞물려 진행되는데, 공공기관의 뒷받침이 있어 보다 원활하고 효과적인 사업 진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언급한 갖가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나면 이후 관리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마을관리 협동조합’에서 맡는다. 살펴보면 재생사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을 주민들이 항상 함께 하는 것으로 풀뿌리 자치의 싹을 틔우는 좋은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 소규모 마을재생 사업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은 부안군 도시재생 지원센터의 한승헌 국장은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살기 좋아지고, 어린 친구들이 좋은 기억을 안고 있는 동네라면 결국 그들이 돌아와 정착하게 될 거라고 본다”며 “비록 사업 규모는 작지만, 진행 방식과 취지에 있어 어떤 것보다 소중한 프로젝트다”라며 이 사업이 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뿐 아니라 인구문제까지 접근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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